사북 같은 존재
사북 같은 존재
  • 노년신문
  • 승인 2019.01.05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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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산책 - 박하림(수필가 / 전 (주) 휴비츠 고문)

쥘부채가 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골격을 이루는 부챗살. 살과 살을 이어주는 부채 옷, 살을 안아 양 쪽의 기둥역할을 하는 가위다리 그리고 그들 전부를 한 곳으로 모아 결속, 유지하는 사북이 있어야  한다, 

대체 사북은 무슨 역할을 하는가. 

그건 쥘부채의 살이나 가위다리의 교차된 곳에 박는 못 같은 것으로 가장 요긴한 부분이다. 

아무리 부챗살에 좋은 옷을 입히고 양쪽에 튼튼한 가위다리를 세워도 쥘부채의 구성요체들을 모아 하나로 잡아주는 사북이 없으면 쥘부채의 완성은 불가능하고 쥘부채로서의 소임을 다 할 수 없으며 쥘부채로 존재할 수가 없다. 그것의 존재성이란 어처구니가 없는 맷돌이 존재할 가치가 없는 것과 똑같다. 

 인간사회의 구성이나 돌아가는 이치가 저와 유사하다. 

 사회구성원들은 쥘부채의 살이나 가위다리 같아서 개인마다 역할과 소임이라는 옷을 입고 사회인으로서 협업에 참여하는데 거기에는 반드시 리더, 전문가, 담당자, 기술자 등 사북 같은 요인要人이 있어 이끌고 해결하고 성사 시킨다. 

 예전에는 한 집안이나 한 나라의 기둥이 될 만한 인물인 동량재棟樑材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쥘부채의 사북 같은 요인이 필요하다. 

그 요인이란 해결사로서 크게는 나랏일을 책임지고 이끄는 역할부터 작게는 정기적으로 생활쓰레기를 수거해가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보통 정치를 그르치면 나라가 망한다고 생난리를 쳐도 쓰레기수거가 파업으로 중지돼 한 달만 쌓일 경우 어떤 속수무책의 난처한 상황이 벌어질지 실감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정치를 그르친 사람보다 쓰레기수거를 해가는 사람이 요인인 것이다. 사회구성원 간의 관계에 있어 그러한 역할의 분담을 존중하는 의식과 원칙이 다름 아닌 민주주의정신인 것이다.

 한데 사회 곳곳에서 묵묵히 사북 같은 역할과 기여를 하는 요인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대우 또한 불평등하다. 예컨대, 병원의 간호사, 수돗물 정수와 공급관리자, 여객기정비사, 아파트 분뇨수거 원, 건설노동자 등 소위 인기직업이 아닌 일을 평생 천직으로 여기고 붙박여 일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사북 같은 소중한 요인인 것이다. 

 그런데 저런 요인들에 대한 대우는 어떠하며 저들이 정상적으로 퇴직할 때까지 저들이 받는 인센티브는 어떠한가. 요인으로 일관하는 근속이 길어질수록 보수가 증가하고 상을 주고 평생을 근속했으면 훈장까지 주어야 한다. 전쟁도 치른 적이 없는 젊은 장군이 가슴에 훈장을 주렁주렁 단 것은 존경심이 들지 않아도 수십 년 씩 한 일에 종사해 달인이 된 요인들이나 평생을 요인으로 일하다 정년퇴직한 사람들은 가슴에 훈장 한 개가 보이지 않아도 절로 존경하는 박수를 보내게 된다. 

 그리고 훌륭한 가장, 아버지, 남편, 성실한 요인, 납세자, 선량한 이웃, 견실한 사회인, 정의 편에 서고 준법하는 국민으로 평생을 산 공로를 인정, 최고훈장을 수여한다.  

 저런 요인들이 제대로 대접 받는 사회가 민주주의 국가고 정의로운 사회인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저런 요인에 대한 젊은이들의 의식이나 인식이 부족하고 잘못되었다. 직업에 대한 인식이 턱없이 부풀려지고 편식이 비이성적이리만큼 심하다.

지금 우리나라의 소위 ‘3D’ 업종의 직업이나 건설노동이나 음식점 서빙 같은 힘든 직업은 우리나라 젊은 노동자들이 기피, 거의 외국인이 차지했는데 이러한 직업편중경향은 심화되고 고착화 되어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일자리의 감소, 젊은이들의 건전하지 못한 직업관의 고착, 노동력의 해외의존도 심화, 나약한 젊은 세대 등 나라 장래를 우려하게 만든다. 

 실로 나라의 운명이 그 나라와 사회에 얼마나 많은 사북 같은 요인이 고루 분포돼 있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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