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골프쳐요”
“저도 골프쳐요”
  • 노년신문
  • 승인 2018.12.25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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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중탁 미국 골프 티칭프로(USGTF)의 재미있는 골프이야기 40

다음은 지난 해 5월 경기도 이천군내 S골프장에서 고참캐디 K양으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다.
그날따라 단체팀 가운데서도 운없게 구순이 백순이 각 2명인 여성팀을 맡게 되었다.

우리는 골프를 친다며 대단한 프라이드로 목에 힘이 들어간, 당연히 최상전 VIP로 대우 받기를 기대하는 여성고객들이었다. 캐디들 표현대로 ‘푼수끼가 넘치는 류’의 여성 고객님들이었다.

두 백순이들은 계속 펄썩 거리며 땅을 파는 건지 공을 치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정신이 없고 진행이 안 되었다.
그럼에도 하늘같은 자존심은 캐디의 정확한 조언은 들으려 하지 않고 ‘연습장에서도 잘 맞았고, 얼마 전 라운드에서도 아주 잘 쳤었는데… 오늘은 내가  왜 이래?’ 형(型)의 골퍼였다.

사실 그 정도가 실력의 전부로 보였다.
짜증이 났던지 캐디에 대한 불평도 나오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그 캐디는 ‘저도 골프쳐요’ 라고 고백하며 스윙자세까지 훈수해 주었지만 여전히 지구를 공으로 착각하고 연신 뒷땅만 쳐댔다.
공은 뜨지도 않고 ‘굴러만 가는 굿샷’만 만들어 냈다.
그런데 채를 바꿔서 급히 페어웨이 고객에게 가는데 카트에 타고 기다리던 여성 고객들이 나누는 대화가 어렴풋이 귀에 들려왔다.
“지가 공을 친다고? 캐디 주제에?”

순간 맥이 풀리며 당장 집어던지고 클럽 하우스로 들어가서 보따리 싸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또 참고 겨우 표정관리하며 임무를 계속 수행했다.

캐디가 공을 친다는 소리를 듣고부터 그 여성들은 케디의 일거수 일투족을 훔쳐보며’저 몸매에 무슨 골프를 친다는 거야…?’라는  의심어린 표정들이 역력했다고 한다.

궁금해서 못 참던 그 고객들은 결국‘그럼 언니가 샷 한번  해보라’고 권하며 은근히 테스트를 해 보려는 것이었다.
캐디는 경기진행 보조자로서 근무중 손님들과 공을 함께 칠 수가 없고 시범 스윙도 원칙적으로 업무규정 위반이라며 한사코 거절했더니 ‘그러면 그렇지, 네가 무슨 골프를…’라는 표정으로 비웃더라는 것이었다.

뒤집히는 속을 참지 못한 그녀는 한 번 본떼를 보여 주겠다고 마음 먹었다.
회사에서 잘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 푼수들의 콧대를 꺾어 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좀 외진 사각지대 홀에 이르러 티샷 직전 빈스윙 시범을 보이고는 맨손으로 드라이버 티샷을 멋지게 보여줬다.
놀라서 박수를 치면서도 그들은 한 동안 할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우드로 정확한 세컨샷까지 시범 보여줬다.
그 때부터 그녀들은 말하는 자세와 캐디 대하는 자세를 갑자기 낮추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더욱 주눅이 들어서 샷을 못하고 헤매더라고 했다.
오만한 허풍선이들의 콧대를 납작하게 해 준 셈이다.
마지막 홀을 마치면서도 그들은 ‘골프를 그렇게 잘 치면서 왜 여기서 캐디 생활 해?’ 라며 여전히 비아냥 댔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일부 골퍼들의 캐디를 바라보는 시각의 한 단면이라고 하겠다.
그 골프장은 회사차원에서 캐디들에게 골프를 배우도록 권하고 지원도 하는 회사다. 골프를 쳐 봐야 고객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경영자의 철학이다.

요즘은 대부분의 골프장들이 캐디들의 근무 후 빈 코스에서 3~6홀 라운드를 허락하는 추세다. 물론 전부 무료다.
이 캐디는 틈날 때마다 연습장도 다니고 회사 내에서 수시로 라운드를 해서 80대 중반을 치는 5년 구력의 골퍼였다.
쉬는 날엔 동료들과 다른 퍼블릭 코스에서 정식 라운드도 한다고 했다.

캐디의 근로기준법상 지위는 특수고용 노동자로 분류되며 보험설계사 대리 운전기사들과 같다.
골프장과는 아무런 고용계약도 없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전문직 캐디사장님이다. 수 년 전 정규직전환 문제로 시끄러웠는데 지금은 기류가 달라졌다.

지난 해 6월 한 레져신문의 설문조사를 보면 정규직전환 반대가 57.5%나 되었고 4대 보험적용 반대도 83.5%나 되었다고 한다. 지금 같은 골프산업의 불황하에서 정규직 전환시 기존 수입수준을 보장받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감정노동자 캐디를 하등동물이나 하인처럼 얕보면 큰코다치고 망신도 당한다.

연봉 4천만원(월평균 300만원 이상), 중견기업 중간 관리직원 수준의 소득자들이 다.그녀의 남편 수입과 합한다면 중상층 가정이다.
월 2~3회 라운딩하는 주말 골퍼들보다 생활수준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골프백을 매는 5 ~6 시간 동안만 당신의 도우미나 종노릇을 할 뿐 그 외 시간에는 나름대로 여왕처럼 산다는 것을 명심하라.
당신들보다 한 수 위의 인격체요 오히려 그들이 당신을 더 깔보고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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