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을 찾아서 떠난 사생
메밀꽃을 찾아서 떠난 사생
  • 노년신문
  • 승인 2018.12.02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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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레박 - 반윤희(본지 객원기자 / 1947년생 경북 안동 출생 / 수필가 시인 서양화가)

9월 중순이다.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필 시절이다.

오랜 만에 봉평으로 그림을 그리러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다른 약속을 접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시간이 촉박하여 집에서 부터 뛰기 시작했다. 

 숨이 턱에 차게 뛰어서 역에 도착하니, 아직도 여유가 있다. 

ITX열차표를 뽑아서 들고 대합실에 들어가서 숨을 평정(平正)했다. 아직도 열정으로 사는 내가 신기하다. 

때때로 좌절하고 때때로 용기를 세우면서 이렇게 뛰고 달리는 내 모습을 보고, 저 늙은이가 왜 그래, 하지 않을까 하며, 늦어서 허둥지둥 거릴 때 면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사나하고 우울해 하면서 자책도 하면서, 편해지고 싶다가도 또 발동을 거는 내가 스스로 탓하다가 또 달래다가 하는 것 말이다. 

하루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정(性情)이다. 집에 있어도 일거리를 만들어서 하고, 나가도 일을 만드니 말이다.

 종각에 내려서 화장실을 찾아서 들어갔다가 나오니, 방향감각을 잃었다. 조계사 길로 나오게 되었다. 인사동으로 가려면 길을 건너야 한다. 

시간이 촉박한 것 같아서 주위를 둘러보니, 차가 아무대도 없기에 빨간 신호인 것을 못 보고 화구를 끌고 마구 뛰었다. 갑자기 저 건너편에서 호루라기소리가 들린다. 돌아보았더니 나를 보고 불어대는 거였다. 에라, 모르겠다고 걸음아 나살려라 하고 죽기로 뛰었다.

 인사동 입구에 서 있는 현대사생회 차를 향해서 달려갔다. 늦지는 않았다. 오늘따라 화가들이 꽉 찼다. 다행이 앞자리가 비워있어서 앉게 되었다. 복도에 의자를 펴고 죽 앉아서들 사생을 가야했다. 나는 15분 전에 도착이 되어서 아슬아슬하게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봉평에 가서 메밀꽃을 그리기 전에, 무이 미술관으로 가서 관람을 하고, 점심을 먹고 나서 그림을 그리기로 하였다.

 전시관을 가득 매운 메밀꽃 그림에 한참 취하여 셀카를 펴서 그림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조각공원도 한 바퀴 돌며, 흐드러진 코스모스 꽃 속에 들어가서 사진도 찍어보았다. 

공원가장자리에선 음악회가 벌어지고 있다. 창을 하는 여인네들과 함께 어깨를 들썩여 보면서 화구를 끌고, 장소를 물색하러 산발적으로 흩어졌다. 여기저기 살피면서 빨간 지붕이 보이는 메밀꽃 밭이 이어진 곳으로 가 자리를 잡았다. 돌담 밑에 그늘이 있어서 그 곳에서 죽 행대로 몇몇 화가들과 자릴 잡고 작업을 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색소폰 불어대는 소리가 우리들의 가슴을 울렁이게 더욱 부추긴다. 

봉평의 메밀꽃 핀 산 속에 애절하게 울러 퍼지는 색소폰소리에 내 옆에서 작업을 하던 노(老) 화가(畵家)는 저 색소폰 소리가 내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면서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한참을 집중해서 그리던 화가들이 아~ 저 색소폰 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구나! 옆에 선 노(老)화백(畵伯)도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면서 그리고 있다. 

참, 알다가도 모르는 게 사람의 심사인가 보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몸이 늙으면 마음도 늙어야 공평할 것 같다, 그래도 마음만은 늙지 않는 신기한 법칙이 고맙기도 하고, 불행을 초래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5시에 차가 떠났다. 밀 릴 거라는 것을 예상하고 국도로, 국도로, 차를 달렸다. 하늘밑에 높은 산을 끼고 돌고 도는 꼬불꼬불, 해 넘어가는 산길을 따라가는 재미도 멋스럽고 좋다.

달려서 광나루에 내려 주어서 전철을 세 번 갈아타고 집에 오니 9시 반이나 되었다. 몹시 피곤하다. 사진을 정리하려고 컴퓨터에 앉았더니 피곤이 밀려오고 힘에 겹다.  

미루지 못하는 내성정도 종심을 넘기다 보니 나이 탓인가! 정리를 뒤로 미루고 주섬주섬 걷어 치웠다.

세월이기는 장사 없다더니, 어느새 나도 나이를 먹어서, 마음은 아직도 다 할 것 같은데, 이렇게 맥없이 힘이 쫙 빠져 나가는 느낌이 정말 싫다. 

꿈속에서도 빨간 지붕이 내려다보이는 메밀꽃밭을 완성하지 못한 캠퍼스가 어지럽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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